2018. 12. 22.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

[ 예정된 비극에 대책 없는 공권력이 또다른 비극을 예고하다 ]

2018년 12월 22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에 화재사고로 또다시 그 안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천호동은 지역개발로 성매매집결지는 이제 곧 폐쇄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헛된 망상임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철거예정인 노후한 건축물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비극이 아니다. 여성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착취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예정된 비극이다. 40평도 채 되지 않는 면적에 방 6개가 좌우로 밀집해 붙어 있는 구조는 성매매 업소의 전형적인 형태다. 성매매집결지 업주들은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며 여성들이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많은 돈을 번다는 거짓 포장을 서슴치 않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일이 끝난 피곤한 아침을 좁은 공간에 모여 잠들어 있었다. 더구나 철거가 코앞인데도 업주들은 자신들의 영업권을 행사하며 더 많은 이주비를 받기위해 여성들을 볼모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 보도 당시 비극적 소식에 애도할 사이도 없이 계속되는 뉴스와 댓글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성매매집결지업주들의 대표라는 자의 발언을 여과 없이 인용하였다. 화재현장에서 사망한 업소관련자인 50대 여성을, 마치 성매매여성들을 위해 업주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성매매집결지를 양성화하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여성들의 죽음조차 재물삼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업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처럼 나서기도 했다. 그사이 뇌사상태에 빠졌던 20대 여성까지 두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일명 ‘천호텍사스’는 1960년대 상권이 형성되며 성매매를 하는 삼종술집(니나노집)이 밀집하기 시작되고, 이후 1980년대 올림픽개최 전후로 유리방형태의 성매매업소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10대 여성 인신매매로 악명을 떨쳤고, 전체 업소 수가 280개, 여성 수가 2,000명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는 45개 업소에 141명 정도의 여성들이 남아있다. 2003년 ‘천호 뉴타운 사업(천호 재정비촉진지구사업)’이 서울시의 승인을 받아 재개발, 재건축 계획이 수립되어 최근 몇 년 사이 사업이 2022년 준공을 목표로 활발히 진행중이다. 구역별 추진현황이 차이가 나지만 재개발과 재건축 와중에도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에서 ‘여성인권’은 실종된 사안이었다. 건물이 헐리고, 전기와 물이 끊기는 상황에서도 남은 업주들은 영업을 계속해오다 여성들의 죽음에 몰아넣은 화재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역개발과 함께 병존하는 성매매집결지는 성매매집결지를 운영하는 이들, 이 곳을 찾는 구매자들에 대해 방임과 묵인으로 이를 승인하는 지방정부, 법집행의 사각지대로 만들고 있는 경찰, 검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실제 영등포 성매매집결지, 미라리 성매매집결지는 주변지역 개발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그 과정에서도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억울함만을 호소하며 단속조차 무력화시키고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개발된 지역의 민원에 의지해 그저 삭제시키면 되리라 믿었던 성매매집결지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마치 허가받은 지역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성매매집결지 주변 지역의 정비나 폐쇄가 그에 대한 형성과 유지해온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단지 지역개발의 명목으로만 이루어질 때 우리는 손쉽게 업주들에게는 재산권자로서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주장처럼 오랫동안 영업해온 이들로서의 위상만을 인정해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12월 24일 공동대책위가 꾸려지고, 26일 서울시 주관으로 대책회의가 열렸다. 첫째, 철저한 수사요청, 둘째, 실업주,건물주,조합에 대한 압수수색과 진상규명, 셋째, 서울지역 집결지에 대한 단속과 강력한 처벌, 넷째, 단속 시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조치 및 지원대책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세스 마련, 다섯째, 서울시 차원의 성매매집결지 종합대책 수립이 공동대책위의 요구사항이었다. 하지만 화재참사이후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찰은 수사 중간브리핑조차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건물주나 알선업주에 대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당수사관의 입을 통해 들어야했고, 당연히 증거자료로 쓰였어야할 유품은 내용파악도 하지 않은체 유가족에게 전달되었다. 지방정부와 서울시의 대책 또한 가시화 된 것은 전혀 없다.

성매매집결지의 호황시절에 결탁하여 이익을 챙기고 여성들을 착취한 바로 그자들이 부동산 개발에서도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나뉘어 이전투구하고 있고 공권력은 그들의 협박에 굴복하거나 협작하고 있는 작태를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의 화재사건은 너무나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죽은 여성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성매매집결지를 이토록이나 오랫동안 유지시켜온 부끄러운 역사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묶어야겠다, 또다른 예고된 비극을 막기위해.